41page


41page

공은 옥구군 서수면 고산리에서 부 위 용석공과 모 밀양박씨의 장남으로 출생하니 시조 수로대왕의 70세손이요 김유신장군의 58세손이며 파조 홍문관박사 휘 맹 호 남계공의 17세손이다. 임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전주농업학교에 진학하였으나 뜻한바 있어 학업을 중단하고 농사에 전념하던중 마침내 일제의 수탈이 극심하던때인지라 소작쟁의등의 농민항쟁이 계속되더니 드디어 1927년 에는 서수소재 이엽사농장과의 소작료경감및 불납투쟁이 일어나매 공은 옥구군농민조합 서수지부장으로서 본사건의 추도하였고 집행위원들 대부분이 체포구금되는 와중에서도 꾸준히 소작료 경감운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고산리 동산에 서수야학당을 건립하고 그 원장에 취임하여 문맹퇴치사업의 일환으로 성인교육을 실시하고 미취학소년을 모아 보통학교수준의 교육을 실시하였으니 후일 마용국민학교가 설립될때 제1회 입학생의 임지교사로 사용되었으니 실로 그 모체가 된것이다. 뿐만아니라 지역사회의 지도자로서 그 온유후돈한 성품은 무언중에서도 능히 중인의 심금을 울리기에 족하였도다. 어호애석하도다! 지역민의 촉망이 여차하였거늘 어찌타 그중망을 뒤로한채 난세에 장서하였도다.후예는 모름지기 자손대대로 그 유덕을 기리고 닫들지어다. 배위 합천이씨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