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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 각지에 3천여매를 배포하고 귀향 직후 임피시장일을 택하여 동지들과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절규하시다 일제관헌에게 체포되어 군산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대구복심법원에 이감되니 징역 9개월에 언도된 바 있고 기후향리지방에서 지하조직으로 재차 의거를 도모하시다 수차 일경에 혹독한 고문으로 생명이 위독하였을때 부인 고정렬 여사께서는 단지수혈하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하였으나 광복의 영광을 보지 못한 한을 남기시고 서거하셨으니 오호라 의사의 춘추 27세이시다. 당시의 자세한 행적은 동아조선일보에 보도됨은 물론 선생의 재판기록에도 여실히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은 공적을 빛내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1980 년도 국가독립유공자로 포상하셨으며 유해를 국립묘지에 이장토록 수차 권고한 바 있으나 자손들이 인자하신 모친의 부덕을 같이 흠모하겠다는 효심의 발로에서 고향에 모실것을 결심한 바 국가에서는 의사의 애국정신을 영원히 빛내기 위하여 독립유공자 공적묘비건립기금이 하사되었다. 이제 우리는 의사의 숭고하신 구국충절을 길이 추모하고 다같이 민족정기함양에 노력할 것을 다짐하여 후세교화에 귀감이 되고 후손들의 영광된 번영을 기원하면서 의사의 순국정신을 담은 공적묘비를 근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