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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제 고봉민 의병장은 을사늑약이 일본의 강제로 체결된 이듬해에 의병운동의 맹주이신 면암 최익현선생을 모시고 돈헌 임병찬선생이 주동하여 일으킨 무성서원 병오창의에 솔선 참여하셨다. 경술국치 즉후 고종황제는 1912년 9월에 임병찬장군에게 독립의군부를 조직하도록 밀지를 내리면서 고봉민의사에게도 특승 종3품 통훈대부의 작위를 내렸으며 또한 독립의군부 잔라 순무영 경리관 겸 만경군 소모관으로 임명하였다. 칙명을 받은 의사께서는 소유하고 있던 재산과 농토를 처분하여 시급한 군자금으로 조달하는 한편 모병활동에도 전력을 다 하셨다. 의사께서는 순무영활동을 시작한지 1년여가 지산 1914년 일본 관헌에 체포되어 옥고를 시달리다 기울병에 이어 풍증까지 발병하셨다. 1916년 총사령관인 임병찬장군이 체포되어 거문도에 유배중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실어증까지 겹치면서 3년여의 혹독한 옥고를 치르고 석방되셨다. 중병환자로 귀향하신 후 줄곧 3년간의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1919년 3.1만세운동에 앞장서셨으며 이로 인해 지병이 악화되어 부인 서표산여사의 지극정성의 간호를 뒤로하고 망국지탄속에 순국하신 정충대절을 지킨 열사이셨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순절을 높이 받들어 1990년 12월 20일 독립유공자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