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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 이규홍선생은 고종16년(서기 1881)에 이고장 익산군 두천면 관동(현 이리시 팔봉동)에서 중추원 의관 이겨영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자는 원오 관은 경주로 개국공신 성중의 19세손이다. 천자총명하여 학문이 조숙하고 성품이 강직하며 정의로써 사람을 포용하는 덕망이 있어 약관에 중추원 의관에 피선되었다. 당시 왜적의 침략으로 국운이 누란의 위기에 ?하자 선생은 멸신보국할 것을 결심하고 동지 박집항 문형모 와 더불어 당시 태인에서 돈헌 임병찬선생과 함께 거의를 도모하고 있던 면암 최익현선생을 찾아가 백의출병에 동참할것을 맹약하였다. 광무 10년 면암이 태인 무성서원에서 거병하자 선생은 그에 뒤따라 자신이 조직한 의병일대를 거느리고 갈담까지 진군하였으나 면암이 거느린 의병이 순창에서 패전하고 지도적인물 전원이 체포되었다는 비보에 접하자 선생의 의병도 해산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 후 대마도 구감에서 풀려나온 돈헌선생을 중심으로 하여 재거의를 도모하던중 광부 11년에 일제가 한국군대를 장제해산시킴에 따라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창발하게 되자 선생은 자?으로써 거병할것을 결심하고 동지를 모아 인근 각읍의 군병과 군기를 규합하여 의병부대를 편성하였다. 이때 의병이 257명 양총 100정 한총 200여정 탄환 200여두 화약 10여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