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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용기(文鏞棋) 열사 1919년 4월 4일 뭉용기 열사는 남전교회 교인과 도남학교 학생들을 인솔하고 솜리장터에 도착하였다. 12시 30분, 300명의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1000여 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문용기 열사는 대한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사자후를 토한 뒤 맨 앞에 서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총칼로 무장한 일본 헌병들은 만세를 부르는 문용기 열사에게 발포하는 한편 태극기를 든그의 오른손을 칼로 내리쳤다. 문용기 열사는 땅에 떨어진 태극기를 왼손으로 집어들고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매 일본 헌병은 다시 그의 왼손마저 칼로 내리쳤다. 두 팔이 잘린 문용기 열사가 맨몸으로 피를 흘리며 계속 행진하자 일본 헌병은 무자비하게 문용기 열사의 몸을 난자하였다. 문용기 열사는 숨을 거두면서 "여러분! 나는 이 붉은 피로 우리 대한의 신정부를 음조하여 여러분들이 대한의 국민이 되게 하겠소"라는 말을 남기며 장렬히 순국하셨다. 아아, 거룩한 문용기 열사의 품으신 뜻, 후대 민족의 찬란한 빛이시라!' 1990년 대한민국 정부는 문용기 열사에게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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