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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는 오인이 위지의리니 일본은 조선에서 즉시 철수하라 하셨다. 귀국 도중 하관에서 피체되어 경성에 이감되었다. 출옥 후 민족정신 계발의 일환으로 광문회를 창설하고 신구서적 발간 및 조선어 연구 정리에 심혈을 경주하였으나 왜헌의 감시와 재정의 결핍으로 차역 중단하고 평생을 영어신세로 칩거하셨다. 8.15 해방 후에 돈암장 경교장 급 미군정청에 남한 단독정부수립을 건의 종용하셨다. 국우민환 속에 쇠질이 익황하여 임종에 위 동지 왈 국란이 여차에 와욕이사하니 민사괴극이라 하고 합연이서하시니 차비국궁진췌하여 사이후기자호아 오호라 이경개지성과 총명지자로 능겸신구문학이조시불운하여 막전기일이하니 천호여 차하인사오. 이고려삼중대광 평성부원군 시충정 휘 언조로 위일세 하고 전지 휘 송욱 하여 증 한성우윤하니 어공에 위 증조라. 조 휘 상우는 증 동추오 고 휘 노상은 오위장이오 비 숙부인은김해 김씨다. 선생이 생어 고종 정묘 9월 23일하여 졸어 무자 3월 7일 하니 독립표창 및 건국포장이 추증되었다. 배 광주 이씨는 무진 2월 29일생 하여 계유 12월 24일 졸하다. 자는 진완 진홍이오 장손 익순은 육군대령이다. 여 다불진록이라 기미춘에 대령이 방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