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page


178page

3·1운동 당시 중앙지도체 인사 중의 한 사람으로 전라북도 익산 출신이다. 손병희 등이 주축이 된 거족적인 독립운동계획에 참여하여 일본 정부와 귀족원·중의원에 조선독립에 관한 의견서와 통고문 및 선언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에 2월 27일 오후 7시 최남선(崔南善)으로부터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통고문 3통과 선언서를 받아가지고 경성을 출발하여, 3월 1일 오후 4시경에 일본 동경에 도착하여 3일에 이 서류를 일본 수상과 의회에 우송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3월 9일 귀국 도중에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본국에 압송되었으나, 미결수로 1년 7개월간 옥고를 치르다가 이듬해 10월 30일 경성복심법원의 판결을 받아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