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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성 적은 진주 소씨이시며 시조는 신라국 상대등 각간(현 총리급) 소 경이시며 경상병마절도사 소기파의 13대손으로 아버지는 소 휘백이시고 어머니는 경주 최씨이시며, 1882년 1월 28일 익산군 망성면 어량리에서 태어나시었다. 소년시절부터 학문에 열중하더니 1910년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제로 합병하자 나라 잃은 슬픔을 한시도 잊지 못하고 가슴 아파하던 중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적극 가담하시었다. 같은 해 3월 27일 현 대전역 앞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는 김현태의 집에서 조상련, 김창규, 윤명화, 박종호, 김성현 등 6인이 모여 독립운동을 일으키기로 모의한 바, 그날이 바로 대전 장날로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자 이들에게 독립운동의 중요성을 알리는 연설과 함께 태극기와 독립 신문, 독립 선언서 등을 나눠주며 만세를 선창하니 군중들이 호응하여 태극기를 높이 들고 세차게 일어나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그 직후 일경에 체포되어 당시 보안법 위반의 죄목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공주 감옥소에서 복역하시었다. 출소 후 만주로 들어가 우리 독립군과 합세하여 사선을 넘나들며 항일 독립 운동을 하시다가 해방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오셨으며 부인 하동 정씨 사이에 1남3녀를 두었으며 1952년 1월 10일 세상을 뜨니 향년 71세였다. 묘소는 익산시 망성면 어량리 1774-25번지에 있다. 진주 소씨 종중에서는 의사의 애국충절을 널리 알려 후세에 길이 전하고 본 받고자 이 비를 세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