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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암 이중열 선생은 개국 478년(서기 1869년) 6월 18일에 나시어 개국 538년(서기 1928년) 5월10일에 여의시니 세수가 60세라. 그동안 천도교 익산교구장으로 계시면서 중앙교주 손병희 선생과 결혼하고 기미독립을 꾀하였으니 3월 1일 애국동지를 규합하여 호남의 각역과 주요지방에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고 요소에 첩부케 하다가 마침내 5월 14일에는 황등 함열 여산등지의 수백명 군중을 영솔하여 태극기를 휘날리며 독립선언문을 배포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으니 함성이 천지를 진동케하였고 정기 바야흐로 태양을 향하여 높았었다. 비록 그러나 시운이 비색하여 이때가 나라 기운지 10년이라. 왜경은 마수를 뻗쳐 모든 애국지사들을 체포하였으니 선생도 이날 구인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시다가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365일의 옥고를 겪으셨다. 때에 같이 형집행을 당했던 동지들이 있었으니 방명으로 적어보면 이원규 홍영섭 송일성 최재붕 김병호 전재만 유태유 서성윤 민영순 아홉분이시다. 화무 십일홍이요 인난백년수라. 이긍 이완택 씨가 60이 지났으니 그날의 애국동지들이 장수하신대도 오늘에 이르르지 못할거라 구차하게 사는 긴 생명보다 의로운 마음의 보배를 지닌 생애가 그 얼마나 갑진 것이랴. 공적을 들어 후인의 거울이 되고자하여 선생의 수도요령을 여기에 각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