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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제 10대 박병준 장로는 그의 동생이시다. 박병호 선생은 평소 학문에 대한 집년과 불의에 굽히지 않는 의협심이 강한 성품으로 1945년 8월 15일 해방직후 조국의 혼란기에 사회질서 유지롸 올바른 국가관 확립을 위해 오산면 애국청년단(80명)을 인솔하고 대한독립청년단을 조직하여 청년운동을 전개하셨고, 한반도를 미,영,중,소 4개국의 신탁통치하에 둔다는 신탁통치안을 을 반대하는 반탁운동과 반공운동에 앞장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수립에 크게 기여하셨다. 선생은 대한청년단 오산면 단장겸 익산군 부단장을 역임하고 면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오산면장에 취임하여 면민의 복리증진에 진력하셨다. 순교자 박병호선생은 부모님과 함께 섬기던 남전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중 교회의 목사관이 없는것을 심히 안타깝게 여기고 교회옆 북참마을에 위치한 적산가옥을 교회에 귀도록 노력하여 마침내 그뜻을 이루셨다. 1950년 6.25전쟁 당시 남전교회 교인이며 대한청년단 오산면 단장 겸 익산군 부단장과 오산면장으로 활동하고 있던 박병호선생을 인민군은 최우선 처형대상 으로 지목하였고 결국 토착 좌익세력들이 박병호션생을 체포하여 그를 치안대의 거점이었던 북참마을 창고에 감금하고 심하게 고문하였고 1950년 8월 2일 인민군에 의하여 익산시 영동동 소라산으로 끌려가 순교하셨다. 박병호션생은 마지막으로 대한민국만세를 외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후 순교하셨으니 향년 41세이였다. 이에 남전교회는 교회와 조국과 겨레를 위하여 활동하시다가 순교하신 박병호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세세토록 충혼하고자 온 성도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