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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기(文鏞祺, 1878~1919)는 군산 영명학교 교사로 1919년 4월 4일 익산 3·1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문용기는 박도현·장경춘 등 기독교 계통의 인사들과 몰래 만나 사전계획을 수립하고 3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익산장날을 기해 시가를 행진하였다. 시위 군중이 1,000여 명으로 늘어나자 일경은 소방대원과 대교농장 직원들을 동원하여 시위 군중에게 무차별 발포를 하고 곤봉과 갈고리로 닥치는 대로 폭행을 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문용기는 통검으로 가슴을 찔려 유혈이 낭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결국 순국하였다. 현재 독립기념관에 그의 피 묻은 옷이 소장되어 있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