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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 이승훈 선생 약력 선생은 1864년 3월 25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15세부터 보부상으로 장사를 시작하여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청일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기도 했으나 35세에는 평양에 큰 상사를 개설하고 국제무역상으로의 입지를 굳혔다. 을사조약에 이어 1907년 고종이 강제퇴위되자 망국의 한을 느끼며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때부터 고향 정주에 오산학교를 세우고 후진을 양성하기 시작했으며, 신민회 총감과 태극서관 관장을 역임하는 등 애국활동을 전개하였다. 1911년에 무관학교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고, 이어서 105인 사건에도 주모자라 하여 계속 투옥되었으나 5년 만에 출옥하고, 이듬해에 오산교회 장로가 되어 기독교 활동과 함께 사회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에는 33인의 대표로 3.1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고, 일제에 체포되어 세번째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에도 조선교육협회 창립, 제4대 동아일보 사장 역임, 물산장려운동 확산 등 사회운동과 이상향 실현을 위해서 힘쓰다가 1930년 5월 9일에 67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