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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헌 이명룡 선생 약력 1873년 8월 2일 이창업의 아들로 평북 철산군에서 태어났으나 1887년 정주군 덕언면 덕성동으로 이주했다. 7세부터 한학을 수학했으며 1892년 기독교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에 정진하였다. 1902년 정주군 상업회의소 소장이 된 춘헌은 일제가 식민지배를 목적으로 설립한 동양척식회사의 토지매수에 강력히 반발하였다.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6년형을 받아 3년간 복역하였고 1919년 기미독립운동 때에도 민족대표 33인중 1인으로 독립선언문에 서명하고 3월 1일 오후 2시 종로 태화관에서 손병희 등과 만세를 외치다 왜경에 체포되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5년 광복 후 조만식 등과 함께 조선민주당을 조직, 고문에 추대되었으며 사재를 모두 털어 평동중학교를 설립하였다. 1947년 4월 공산당의 탄압으로 월남한 후에는 반공연맹 이사, 이준열사 기념사업회, 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 3.1정신 선양회 등의 고문을 역임하였다. 평생을 성서와 농기구를 손에서 놓지 않고 독립운동과 겨레사랑에 헌신하신 선생은 1956년 11월 12일 서거하시어 사회장으로 모셨으며 정부에서도 고인의 공로를 기려 1962년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