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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송천 김연성 열사의 원조는 김알지이며 그의 22세손 명주군왕 김주원을 강릉 김씨 시조로 하여 계대한다. 송천공의 15대 조가 일로정 김양남이다. 그는 려말의 충신으로 당시 문장과 학행이 뛰어난 명망 높은 학자였다. 조선 제3대왕인 태종과 소시적부터 함께 수학한 지기지우로 태종이 등극하여 수차에 걸쳐 벼슬을 내리며 팔조를 권했으나 끝내 출사하지 않고 오직 려조의 신하로 불사이군의 지조를 지키며 양주땅 영근면 반곡에 은거충절로 일생을 마치었다. 양남공의 육세손 김충렬이 중종 26년 식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와 충추관 편수관을 거쳐 한성부 판윤 행제주 목사 겸 병마절도사를 지내다 동두천으로 낙향하여 뿌리를 내렸다. 후로 자손이 번창하여 지역의 명문으로 발전하였다. 한말 일제가 우리나라를 찬탈하자 충절의 후예답게 민족과 국가를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독립투쟁에 몸을 던진 김병기 김병원 김병응 김병주 김병시 선생 등을 배출하였으니 이것은 김문의 영광이요 동두천의 자랑인 것이다. 이 비는 판윤공 종중 첨의로 건립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