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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걱정함은 충성의 근본이요 민족을 생각함은 효도의 바탕이다. 역사상 우리 민족처럼 시련을 격은 민족도 드물것이다. 내 고향 동두천도 타지역 못지 않은 명유선각의 지성과 구국 동양의 지사가 얼마나 많않던가 1905년 을사보호5조약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체결되자 국권회복을 부르짖으며 의열로 일어섰던 의병장 송천 김연성 열사 1870년 5월 5일생 자 범일 호 송천 관성균관 박사 한말 일제초에 의병활동과 독립운동을 한 강릉인 병기의 자이다. 어려서부터 학재가 있어 성균관에서 수학하였으며 관직으로 충청도부사로 있다가 일제 침략에 염로하여 1907년 의병장 황순일의 권유를 받고 봉기 40여명의 부하들과 함께 양주 적성 연천 포천 등지에서 의병투쟁을 전개 이때 같은 동두천 출신 전목기 유재만 선생 등을 휘하에 두었고 1908년 부대를 확대편성하여 200여 의병을 이끄는 대규모 의병부대의 장이 되어 양주 영천 포천 평산에서 의병 투쟁을 전개하다 일군에 잡혀 죽음을 당하였다. 김병기 선생 1850년 12월 4일생 자 성모 강릉인 학복의 자 독립운동가로 한말 왜구의 침략을 저지하고자 의병에 투신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아들 연성도 의병 활동 중 일군에 잡혀 죽음을 당한 바 있는 의병 집안의 가장이다. 1910년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으나 투쟁을 멈추지 않고 1913년 8월 의병장 임병찬 이인순 전용규 등이 의병 출신들을 모아 새로운 항일투쟁조직체인 독립의군부를 조직하자 여기에 참여하였다. 독립의군부는 일본내각 총리대신 및 조선총독에게 국권 반환 요구서를 보내기도 하고 한국인이 일본에게 굴복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국외에 알리는 등의 활동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