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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학근 선생은, 1919년 3·1운동 때 덕천(德川) 서문시장 만세시위에 참가한 뒤, 1924년 경기도 가평(加平)으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1934년 11월 12일 임일봉(林一奉)과 오일보(吳一寶)의 권유로 태극교(太極敎)에 입교했다. 태극교는 겉으로 종교를 표방했으나, 명칭에서 보듯이 민족적 성격이 짙은 단체였다. 평소 민족의식이 투철하던 그는 태극교에 입교하여 일제의 식민통치를 부정하는 한편 조선 독립을 이루기 위해 동지 규합을 위한 포교 활동을 벌였다. 1934년 11월 15일, 그는 정태용(鄭泰鏞)에게 “조선은 언제까지나 일본에 예속하는 것이 아니라, 4·5년 후에는 악질이 유행하고 병란·재앙이 일어나 현재 인민의 대부분은 사망하고 그 때 정왕(鄭王)이 나타나 조선을 독립시키고 충청도 계룡산에 도읍을 정하여 왕위에 즉위하고 태극교도는 정왕을 섬기어 영귀한 생활을 하게 되는 고로 태극교에 입교하여 독신해야한다”고 권유하여 입교시켰다. 이후 차원익(車元翼) 등을 대상으로 “태극교는 천의에 기초하는 것으로 태극의 세(조선 독립)도 가깝고 성천을 통하여 모국을 얻어 교도는 고위로 나아가 영원히 영귀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의 포교를 통해 동지들을 규합했다. 이러한 사실이 발각되면서, 현학근은 1939년 1월 10일 체포되어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