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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원 선생 공적비 지정번호: 향토유적 제24호 / 소재지: 포천시 창수면 추동리 117-2 조영원(1892~1974) 선생은 독립운동가로 호는 각산이고, 본관은 한양이다. 유신학교를 졸업한 뒤 1920년 상해로 망명하여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의원·임정국무원비서장 서리·한국유일당촉성회의원을 지냈다. 1926년 촉성회 대표로 만주에 파견되어 김좌진이 영도하던 신민부의 군사위원으로 활약하면서 해림 신창학교를 창설하여 인재양성에 힘썼다. 1931년 한국독립 총사령부 총참모로 독립군 규합 및 항일구국군총사령 이두에게 한·중 연합전을 교섭하여 실현시켰다. 1933년 만주에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사형수로 복역 중 5년간 집행유예로 본국에 압송되었다. 8·15 광복 후 한국독립당 대표 최고위원으로 피선되기도 하였으며, 1968년 독립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 공적비는 선생의 민족독립운동에 헌신한 공로와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82년 포천의 유지들이 뜻을 모아 건립한 것이다. 비 앞면에는 '독립지사 각산 조영원선생 공적비'라 새겼는데, 비문은 김을한 이 짓고, 조건행이 글씨를 썼다. 비는 장대석으로 된 2층의 기단 위에 장방형의 대석을 설치하고, 그 위에 옥개를 갖춘 대리석 비신을 세웠다. 규모는 178㎝×60㎝×31㎝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