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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산사(茝山祠) 채산사는 조선 말기의 위정척사사상을 주창한 유학자이자 항일 의병장인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1833~1906)과 항일 독립운동가인 염재(念齋) 최면식(崔勉植, 1891~1941)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사당이다. 최익현은 철종6년(1855) 문과에 급제하여 장령, 동부승지, 공조참판, 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공조판서 때 고종의 친정을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려 흥선대원군을 정권에서 물러나도록 하였다. 광무9년(1905) 일본의 강제적인 을사보호조약 체결에 항거하고 전라도 순창에서 의병운동을 일으켰다가 대마도로 유배되었다. 최익현은 대마도로 건너가기 전 부산 앞바다에서 신발에 모래를 채우며 '비록 육신은 일본으로 가지만 일본 땅은 밟지 않겠다.' 라고 했으며, 유배지에서는 '일본의 곡식을 먹을 수 없다.' 하여 단식을 한 끝에 세상을 떠나 그의 나라를 위한 절개를 엿볼 수 있다. 일본에 의해 훼철되었던 채산사는 1949년 지역의 유생들이 면암의 뜻을 기리고자 사당을 다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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