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page


45page

1919년 3·1독립운동 후에 상해로 망명하였다. 1924년 12월에는 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의 충청도 의원으로 피선되어 활동하다가 그 이듬해인 1925년에 사임하였다. 1930년에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정치부 위원 겸 군사부 참모장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한국독립당은 1930년 7월 26일에 한족자치연합회를 모체로 하여 임시정부를 지원키 위한 목적으로 홍진 신숙 남대관 이청천 등이 중심이 되어 창설하였다. 그리고 각부에 소속되었던 독립군 중에서 정예대원을 뽑아 한국독립당군을 편성하고, 당에는 6개의 위원회를 두는 한편 중앙당부, 지당부, 구당부를 설치하고 만주전역의 독립단체를 총망라하여 진영을 강화하였다. 1932년에 그는 한국독립당의 총무위원장에 피선되었으며, 본부를 만주에서 북경으로 옮기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고, 본부를 옮김에 따라 한국독립당군은 해체하게 되었다. 1933년에는 중국 길림 육군 제3군 상교참모가 되어 활약하였으며, 그 이듬해에는 남경에 본부를 두고 있던 한국혁명당과 한국독립당이 제휴하여 신한독립당을 조직하게 되자 그는 감찰위원장으로 피선되어 활동하였다. 1935년 9월 25일에 중국 상해에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징역 10년형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