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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성은 강씨 휘는 지형이요 자는 원방이니 진주인이시다. 1881년 고종 18년에 경기도 포천에서 부 혜효전중직참봉 일영과 모 달성서씨의 사이에서 출생하셨다. 유년 시에 유학을 공부하고 30세가 되던 경술년에 한일합방이라는 조선 최대의 수모를 체험하고 척왜의 의기를 불태우던 중 1919년 3.1운동 후 국내에 거주하던 지사 이헌교 이민태 한남수 이규갑 김사국 등과 서울 한성오의 집에 모여 임시정부 및 국민대회에 관한 구체적 방안을 토의하고 국민대회 취지문을 작성했는데 이때 13도 대표 25인 가운데 한사람으로 참여했다. 그후 만주로 망명하여 1919년 12월 길림성 관전현에서 대한독립단에 가입하고 단장 박장호로부터 대한독립단의 경기도 지단 설립의 명을 받고 1920년 1월 경기도 도시찰 소집 전권위원에 임명되어 입경하여 왕십리에 거주하면서 동지 김기한과 비밀리에 한성에 경기부(서울) 초기관이라는 중앙본부를 조직하고 각도.군에 지단을 설치하려고 노력하였다. 이어 최승환 홍영전 등을 포섭하여 대한독립단에 가입시켜 조직을 확대하고 군자금 마련과 국가독립촉진을 위해 구한국공향대부및 사림은 독립군이 하루 아침에 진입할 때에 호응해야 한다 조선인으로 갑부는 재산의 3분의 1을 독립단에 제공해야 한다. 조선인으로 왜의 관리가 된 자는 독립군이 진입할 때 적을 죽이고 적정을 보고하라"는 등의 격고문, 경고문과 임명장, 사령서, 임시통칙, 군자금영수증 등 수천 매의 유인물을 제작 배포의 책임을 맡아 이를 완수하려고 동분서주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일제의 갖은 고문을 겪으면서 3년의 옥고를 치렀다. 오호통재라 구국의 일념으로 평생을 불태우던 선생은 광복의 환희도 보지 못하고 1931년에 한 많은 세상을 마치셨다. 그 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고 1963년에 정부에서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여 지사의 장한 뜻을 기렸으나 이것으로 어찌 선생의 한 몸을 던진 장한 뜻에 보답이 되리요. 오호통재라 저 세상에서는 태평성대를 만나 편히 쉬시옵소서 서기 2001년 6월 9일 세우다 건립주관 한북신문사 후원 국가보훈처 의정부지청 포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