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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생 선생은 순흥을 본관으로 문성공 유의 27대손이요. 증조는 진해 현감 인수며 조부는 성균 진사 태훈이요. 부친은 나라에 순한 의사 중근이다. 안씨 일문은 황해도 해주에서 누대 살아오다가 부친 2세때에 현감공이 아들 6형제를 거느리고 신천군 두라면 청계동으로 이거하였다. 1905년에 진사공이 별세한 뒤에 부친은 청계동을 떠나 진남포로 이주하였다. 1907년 봄 선생의 태중 6개월 때에 부친은 29세의 청년으로 뜻한 바 있어 노령 해삼위로 망명의 길을 떠난 후 그 해 음 8월 13일에 선생은 진남포 용두동에서 출생하였다. 1909년 10월 26일에 부친은 정의대도에 입각하여 합이빈 역두에서 침략의 원흉 일본의 이등박문을 각국대표들과 만인이 둘러싼 가운데서 연격사살하여 당시 세계인사들로부터 코리아가 아직 살아있었다는 찬사를 받았고 천추에 빛나는 민족정기의 일대표상이 되었다. 이는 선생 3세때의 일로 동년 10월에 조모 조마리아 여사와 모친 김아려 여사를 따라 부득이 고국을 떠나 노령 소왕령에서 10년 동안 적막한 세월을 보내였다. 12세 되는 해에 중국 상해로 이주하여 불란서 조계에서 살게 되었다. 선생은 1938년에 상해에서 지강대학교를 졸업하고 동년에 정공 인태의 장녀 옥녀 여사와 결혼하였다. 조모와 모친은 상해에서 별세하여 불란서 조계공원 일등 묘지에 각각 안장되었다. 그 후 선생의 일가는 1949년에 향항(홍콩)으로 피난하였다가 1950년 6월에 환국하였든 바 6.25 동란으로 1951년 1월에 부산으로 피난 중 선생은 병을 얻어 정매병원선에 입원 치료타가 1952년 11월 18일 하오 4시에 45세를 일기로 병원선에서 별세하니 부산시 초량4동 뒷산에 안장하였다가 1971년 5월 12일 여기 포천군 혜화동천주교묘지에 이장하였다. 김상기 찬 김충현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