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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원사 연혁 신라 제51대 진성여왕 3년(己酉, 889) 도선(道詵)국사가 현 연세대 터에 창건하고 반야사(般若寺)라 하였다. 제21대 영조 24년(戊辰, 1748) 찬즙(贊汁), 중암(增岩) 두 스님에 의해 지금의 터전으로 이전하였고, 영조는 친필로 봉원사(奉元寺)라 현액하였으며, 신도들 사이에는 이때부터 새로 지은 절이라 하여 "새절'이라 부르게 되었다. 제22대 정조 12년(1788)에는 전국 승려의 풍기를 바로잡기 위한 8도승풍규정소(八道僧風糾正所)가 설치되었으며, 제26대 고종 21년(甲申, 1884) 발생한 갑신정변(甲申政變)의 주축을 이룬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 개화파 인사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이동인(李東仁)스님이 5년간 주석하였던 갑신정변의 요람지이기도 했다. 1911(辛亥)년 주지 보담(寶潭)스님의 중수와 사지(寺地)의 확보로 가람의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1945(乙酉)년 주지 기월(起月)스님과 대중의 원력으로 광복기념관을 건립하였다. 1950(庚寅)년 9월 28일 서울수복 당시 병화(兵火)로 광복기념관이 소진되었고, 이때 영조의 친필 현관 등 사보와 이동인 스님 및 개화파 인사들의 유물이 함께 소실되었다. 1966(丙午)년 주지 최영월(崔映月)스님과 도화주 김운파(金雲波)스님과 대중의 원력으로 소실된 염불당(念佛堂)을 중건하였는데 이 건물은 대원군(大院君)의 별처였던 아소정(我笑亭)을 헐어 옮긴 것이다. 1991(辛未)년 32대 주지 김성월(金性月)스님과 사부대중의 원력으로 삼천불전 건립 도중 대웅전이 소진됨에 즉시 중건을 시작하여 1991(甲戌)년 27.33.34대 주지 김혜경(金慧鏡)스님과 사부대중의 원력으로 대웅전을 복원 낙성하였고, 명부전을 확장 이전하였다. 현재 50여 스님이 상주하며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부분 인간문화재(1972년 지정) 이만봉스님이 주석하시며,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인간문화재(1973년 지정) 박송암스님(2000년 2월 1일 입적) 주석. 그 후 1987에 영산재 보존회 단체로 지정되어 법음, 범패 계승에 전력을 다하고자 교육기관인 옥천범음대학을 설립 운영하고 있으며 또한 관음회, 화엄회 학생회 등 법회가 개최되며 교도소, 소년원, 양노원, 고아원, 군부대 등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