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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 - 38세 을사늑약 체결 음모 저지운동, 상동교회 청년조직을 중심으로 을사늑약 무효화 투쟁, 을사5적 처단을 도모하다. 1906 - 39세 상동교회 지하에서 전덕기, 이동녕, 양기탁과 신민회를 조직하다. 1907 - 40세 1월 중순, 부인 달성 서씨가 세상을 뜨다. 4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대한제국대표단 파견을 기획·진행하다. 1908 - 41세 비밀리에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이상설과 신민회 향후 활동목표를 협의하다. (해외독립문기지건설, 전국적 지하조직 확대, 지방에 교육기관설립 등 계몽활동 전개) 10월, 상동교회 유일서관에서 한산 이씨 은숙과 최초로 양식 혼례를 치르다. 아들 규룡을 첫째 형 이건영에게 양자로 보내 규학이 장자가 되다. 1909 - 42세 신민회 간부 비밀회의에서 만주지역 독립기지 건설과 무관학교 설치를 협의하다. 1910 - 43세 여름, 종이장수 행색으로 이동녕, 장유순, 이관직과 서간도 일대를 둘러보다. 경술국치를 당하자 6형제는 전 재산을 처분하여 12월 30일 전후로 40여 명 식솔과 동행을 지원한 노비 60여 명을 이끌고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다. 1911 - 44세 2월 초순, 서간도 류허현 삼원보에 머물다. 4월, 삼원보 추가가 대고산 아래에서 노천 군중대회를 열고 경학사 설립을 결의하다. 11월 베이징으로 가서 위안스카이 총통과 회담하여 토지매입 문제를 해결한 뒤 퉁화현에서 100여 리 떨어진 합니하를 독립군 양성기지로 결정짓고 땅을 사들이다. 경학사를 조직하고 유림대표 이상룡을 경학사장으로 추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