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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 - 출생 4월 21일, 서울 저동에서 이조판서를 지낸 아버지 이유승과 동래 정씨(이조판서를 지낸 정순조의 딸)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나다. 1885 - 18세 갑신정변(1884년) 이후 외세 침탈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관직진출이 무의미하다고 자각하고, 이상설, 려준 등과 만나 수학·역사·법학·동서양 역사 등 신학문 수학에 진학하는 한편 성리학을 넘어 양명학을 공부하다. 이 무렵 달성 서씨와 혼인하다. 1888 - 20세 적서타파, 과부재혼 장려, 노비에게 낮춤말 쓰지 않기 등을 실행하다. 누이가 정상과부가 되자 가파 초상을 치르고 은밀히 재혼토록하다. 1896 - 29세 내장원 협조를 받아 경기도 개풍군 화동 휴곡 일대 삼목 5,000여 주를 심어 삼포농장을 개척하고 양삼 시험장을 설립, 관삼을 재배하여 국가재정에 기여하다. 아들 규학이 태어나다. 1901 - 34세 일본인 70~80명이 상포농장에 침입하여 인삼을 대거 약탈한 사건이 일어나다. 이를 내장원에 보고하고 용산에서 일본으로 실려가기 직전인 인삼 12척을 되찾고 고발하다. 이면우(일본 유학생 출신)를 한국측 대리인으로 법정투쟁을 전개하다. 일본공사 하야시가 화해를 요청하여 내장원경 이용익이 양해하고 형사고발을 취하하다. 인삼 전량을 회수매각하여 국고에 납입하다. 1902 - 35세 탁지부(재무통장총괄) 대신 이용익은 이회영을 탁지부 주사 겸판임관으로 임명했으나 취임하지 않다. 1904 - 37세 전덕기 목사 권유로 상동교회 부설학교 설립에 참여하다. 일제 침략에 대항하기 위한 전국 청년조직 건설을 절감하고 상동청년학원 원감으로 취임하여 전덕기, 주시경, 이동녕 등과 활동을 개시하다. 비밀결사 신민회를 태동시키는 계획을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