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page


99page

강태선 제주 성산(城山) 사람이다. 1942년 6월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대판(大阪)에서 신문배달을 하며 중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던 중 일제의 한국인 차별대우를 체험하면서 점차 민족의식에 눈떠갔다. 그는 주불해(周佛海)가 지은 ≪삼민주의(三民主義)≫ 등 사상서적을 탐독하며 한국 민족의 진정한 행복은 일제의 지배를 벗어나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길밖에 없음을 인식하고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1942년 8월경 친지인 지원호(池源鎬)·심종보(沈宗輔) 등과 모임을 갖고 독립운동의 방안에 관해 협의하면서 태평양전쟁에서 일제가 패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므로 이 기회를 이용하여 일제히 봉기하면 조국의 독립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데 뜻을 같이하였다. 또한 징병제는 독립운동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일제가 강요하는 동화정책(同化政策)은 민족의식을 말살하는 것이므로 강력히 저항해야 한다고 의견일치를 보았다. 이들은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모임을 갖고 서로 민족의식을 함양하며 무력에 의한 독립봉기의 시기 등을 협의하는 한편 동지규합에 힘쓰다가 1944년 6월 3일 일경에 피체되었다. 그는 1944년 8월 25일 대판지방재판소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8·15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