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page


87page

임우철 충남 연기(燕岐) 사람이다. 중농 가정에서 출생하여 연기공립보통학교(燕岐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1936년 4월 대전공립공업전수학교(大田公立工業專修學校) 토목과에 입학하여 1939년 3월 졸업하였으며, 졸업 후 조선총독부 내무국 경성토목출장소에 고원(雇員)으로 채용되어 공사계(工事係)에서 근무하였다. 1941년 2월 경성토목출장소를 의원면직하고 일본으로 도항하여 동년 4월 동경(東京) 공옥사고등공업학교(攻玉社高等工業學校) 토목공학과 야간부에 입학하여 재학하면서 5월부터 주간에는 동경시 토목국 하천과 명석정힐소(明石町詰所)에 근무하였고, 12월부터는 동경시 토목국 건설과에 용인(庸人)으로 근무하였다. 동경 공옥사고등공업학교 입학 후 김명기(金明起)·금림좌목(金林佐穆)·금성응춘(金城應春) 등 동급생들과 함께 1942년 12월까지 내선일체(內鮮一體)의 허구성을 비판하고 육군특별지원병제도(陸軍特別支援兵制度)를 이용해 한국인으로서의 자각을 키울 필요가 있으며 귀국하면 한국인만의 회사를 설립하여 민족자본을 육성하고 공업학교(工業學校)의 교원이 되어 청소년을 훌륭히 육성하는 한편 한국어를 널리 보급하여야 하며 궁성요배(宮城遙拜)는 불필요하다는 등 민족의식을 함양하다가 피체되어 1943년 12월 전주지방법원(全州地方法院)에서 소위 치안유지법위반(治安維持法違反)과 불경죄(不敬罪)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