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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인 광주(光州) 사람이다. 1940년 3월 고학을 목적으로 일본에 건너가 대판공업학교에 다니면서 1941년 2월에 정덕수(丁德秀)와 동지적 결합을 맺고 조국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하였다. 동월 말, 이들은 독립투쟁의 방법에 관하여 의논하고 항일결사 개진대(改進隊)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당시의 국제정세를 분석하여 그에 따른 운동방침을 정하였는데, 즉 중일전쟁의 장기화로 피폐해진 일제에 미·영·소가 참전하게 되면 일제의 패망은 필연적인 것으로 보고 이때를 이용하여 일제히 봉기하여 독립을 달성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후 이들은 동지포섭 및 동지간 결속에 힘쓰면서 항일활동을 전개했으며, 동년 8월에는 활동조직으로서 항일결사 조선독립청년당(朝鮮獨立靑年黨)을 결성하였다. 이때 당칙 및 부서와 행동강령도 정하였는데 당령으로는 정덕수(丁德秀)를 추대하였다. 또한 조직확대에도 노력하여 하부조직으로서 대판내 우유배달클럽 및 신문배달클럽과 유도(酉島) 제2공업학교·관서공업학교·대판공업학교 등에 학생클럽을 결성하였다. 이렇듯 조직을 확대하며 항일활동을 벌이던 중 동년 10월에 동결사의 조직이 발각됨으로써 그는 일경에 피체되었다. 피체 후 1942년 8월 31일 대판지방재판소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