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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추념탑기 단군 성조께서 조국을 세우신 지 반만년 이 땅에 자리잡은 우리 배달민족은 밖으로는 동방예의의 나라로 널리 칭송을 받았고 안으로는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를 키웠으니 우리 민족의 찬란한 역사은 이렇게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우리의 강토는 사계절이 워낙 뚜렷하고 기후 또한 순조롭기에 일찍이 여러나라들의 욕심에 의한 외침으로 편할 날이 없었지만 그때마다 우리 민족은 불굴의 투혼으로 시련을 극복하여 대대로 나라를 보전하였고 오히려 만주벌판으로 웅비한 때도 있었으며 우리의 선진 문물을 이웃 나라에 전달하여 교화에 성의를 다 하였다. 저 한족이나 북방족의 침입이 아무리 질풍같아도 몽매한 왜적의 침입이 아무리 야수같아도 무수한 백성들의 희생 위에 조국은 지켜졌으니 곧 우리의 역사는 도전에 대한 응전의 역사요 국난 극복의 역사였다. 일본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우리에게 어느 이웃 나라보다도 많은 은헤를 입었건만 근대사회의 여명기에 서양문물을 일찍 접하였다고 홀연히 배신하여 은혜를 원수로 갚으니 뜻밖의 일이라 실로 놀라고 분할 뿐이었다. 병자수호조약이래 온갖 억지와 강압으로 침략의 마수를 뻗치더니 급기야 조국을 강탈하여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반만년 왕업이 이로써 무너지니 떨리는 치욕에도 그 원한이 하늘에 사무쳤다. 이로인해 왜인들은 우리 민족에게 내선일체를 강요하며 모든 정치결사에 족쇄를 채우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가 하면 격양가 울려퍼지던 들녘을 빼앗고 모든 생산을 현장에서 착취한 것도 부족하여 남녀 구분없이 저들의 침략전쟁에 제물로 동원시키니 그 분하고 억울함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선열들은 분연히 일어섰다. 일신의 영달과 현실의 안주는 초개같이 버리고 혈육과 고향을 등진채 오로지 조국광복을 위해 형극의 길로 나섰다. 나라없는 설움에 눈물을 삼키고 갖은 고생을 참고 이기며 잃어버린 조국을 절규했으니. 해외에서는 신천지를 개척하여 한 얼을 심고 세계공론에 조국의 독립을 호소하면서 각종 결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으로써 일제를 배격하였고 국내에서는 지하 비밀결사와 평화적 시위운동으로 일제에 저항했으니 이같은 독립운동은 청사에 길이 빛날 것이다. 국내외에서 배양된 자주독립의 역량은 대일항거에 여러 형태로 발휘되었으니 곳곳의 의병운동과 항일 독립전쟁이 그것이요. 때때로 원흉 저격 의거와 민족착취 기관에 대한 습격의거며 삼일운동과 육십만세운동 등 거족적인 만세시위가 바로 그것이다. 그 뿐이랴. 노동자와 농민은 산업전선에서 지식인과 학생은 국민계몽운동에서 각계 각인은 저마다의 분야에서 조국을 되살리려 목숨을 걸었다. 일제 침략부터 광복의 그날까지 우리의 선열들이 오직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한 정당한 주장과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으로 투쟁하자 일제는 독립운동가들은 물론 아무 죄도 없는 남녀노소까지 특수범죄자로 분류하여 그악한 고문과 무도한 만행으로 처참하게 학살하였다. 형장에는 살인이 그치지 않았고 왜경의 칼날에 선열의 머리가 나뒹굴고 잘려진 팔다리가 흩어져서 꿈틀거렸으니 저들의 천인공노할 만행은 우리 민족의 골수에 사무쳤다. 일제는 우리 민족의 끊임없는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전국의 형무소를 늘리고 시설을 확충하였다. 이곳에 끌려온 우리 선열들은 인간으로서의 인륜적 보호는 그만두고하도 햇빛마저 없는 감방에서 영양실조와 뭇매질로 죽어갔으며 연약한 여아까지도 여자 지하감방에서 고문당하였으니 어느덧 '류관순 굴'이라는 별칭이 남았다. 절명의 순간까지도 일제에 저항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그 함성과 비명이 아직도 지하에 쟁쟁하리라. 저들이 우리의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면 할수록 그 수가 증가하니 조선총독은 형무소 소장회의를 빈번히 소집하여 더욱 가혹한 탄압과 내선일체의 전향교육을 지시하였으며 빈발하는 옥중의거를 철저한 탄압으로 사전예방하라 하였으니 이같이 모진 행위로 전국의 형무소에서 죄없는 선열들이 무수하게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순국선열들이시어! 님들은 비록 가셨어도 혼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셨고 일경의 만행들을 동자에 담은 채 눈을 감으셨어도 숭고한 뜻은 겨레와 함께 길이 빛날 것이며 님들께서 보이신 조국에 대한 붉은 마음은 우리의 힘으로 남았으니 님들이 피로 얻은 조국은 우리들 후손이 지키겠나이다. 이곳은 우리의 선열들이 조국광복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하다 끝내 민족의 제단에 장렬히 선혈을 뿌리며 순국하신 곳이니 곧 조국수난사의 현장이요, 한국 역사의 산교육장이며, 우리민족의 의기가 서린 성역이다. 이제는 자손된 우리 모두가 이 성소에 모여 겨레 위해 산화하신 순국선열의 얼을 되새기고 살신구국한 성업을 본받을 때이다. 그 유훈이 깃발되어 배달민족이 하나되고 대동단결하여 열강의 외압을 물리쳐 통일조국의 앞날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니 우리 조국이 만세반석 위에서 영원무궁할 것이다. 여기 있던 서대문 형무소를 일천구백팔십칠년 십일월 십오일 경기도 의왕시로 옮김에 따라 이곳을 민족정기 구현의 도장으로 보존하기 위하여 전국민의 뜻을 모아 성역화 하고 원혼이 되신 순국선열을 위령하며 그 공을 추념하기 위하여 이 탑을 세우노라. 단기 사천삼백이십오년 팔월 십오일 글 국사편찬위원장 박영석 글씨 서예가 동석 이성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