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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동우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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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 통치가 길어지면서 동우회로 개칭한 뒤에 눈에 뜨이는 활동이 없던 수양동우회는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시점에 일본 제국이 일으킨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와해되었다. 본격적인 전쟁 체제를 조성하기 위해 양심적 지식인 및 부르조아 집단을 포섭할 필요가 있던 일제가 수양동우회와 흥업구락부를 표적 수사한 것이다. 1937년 8월 서울에서 55명, 11월 평안도 지역에서 93명, 1938년 3월에는 황해도에서 33명 등 모두 181명의 동우회원들이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 가운데 41명이 기소되었다가 1941년 11월에야 무죄 석방되었다. 이 사건으로 검거된 회원들은 강제로 전향한 뒤 일제에 협력하게 되었다. 작곡가 홍난파, 장로교 목사 정인과, 의사인 이용설 등이 대표적이며, 중심 인물이었던 이광수와 주요한은 특히 극렬한 친일 행적을 보였다. 동우회는 1937년 해산되면서 보유 자금과 토지, 사무기구를 매각한 금액까지 긁어모아 국방헌금으로 납부했다. 윤치호는 조선총독부를 찾아가 수양동우회 사건 관련자들의 신원보증을 서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터진 흥업구락부 사건과 청구구락부 사건 관련자들의 신원보증까지 서 주면서 그는 궁지에 몰리기도 한다. - 출처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