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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동교회와 三.一(3.1)운동 승동교회 면려청년회장이었던 김원벽(金元璧)을 비롯해서 학생지도자들은 1919년 2월 20일 승동교회 1층 밀실에서 三.一(3.1)학생 독립 만세 운동을 숙의하였다. 그러나 독립만세운동이 범국민적으로 이루어지게 됨에 따라 이곳에서 23일 학생측이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소각하고 28일 三.一(3.1)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한편 당시 차상진(車相晉) 담임목사는 "十二人等의 狀書(12인 등의 상서)"를 조선총독에게 제출하고 투옥당하였다. 그 후로 승동교회는 일본 경찰로부터 심한 수색을 당하는 등 많은 수난을 당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