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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열 아홉 살 때 갑오경장의 해에 서울에 올라와 배재학당에 들어 신학문을 닦고 한문과 영어의 공부에서 우리 말글의 훌륭한 가치를 깨닫고 이의 연구에 착수하니 이것이 실로 배달의 말글이 과학스럽고 진리 탐구의 괭이를 보기 처음이었다. 이로부터 스무 해 동안 혹은 정치 운동에 혹은 사회 개량 운동에 혹은 순한글 신문내기에 마침내는 망국민의 생활까지 갖은 풍상과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도 우리 말글 연구에는 잠시의 숨도 없이 그 밝혀낸 학리를 베풀어 말본과 말모이를 지으며 서울 안 모든 중등학교와 일요 강습소까지 혼자 도맡아 가르치기에 편할 날이 없이 성근을 다하다가 드디어 서른 아홉 살 장년으로써 아깝게도 이승을 하직하였다. 스승은 실로 배달 말글의 과학스런 연구의 개척자이요 국어 교육 한글 운동의 선구자이었다. 우리들이 국어 존중, 한글 사랑의 겨레 정신으로써 왜정의 압박에 항거하고 해방을 맞아서는 국어 교육, 한글 운동의 줄기찬 발전을 이룬 것은 다 직접 간접으로 스승의 기친 교화의 소치이다. 아아 갸륵하다. 스승은 겨레 정신의 영원한 거울이요 한글 문화의 불멸의 봉화이다. 4293년 10월 1일 제자 최현배 짓고 후학 정인승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