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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풍설이 요란하여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오래동안 탐구하던 의심을 깨치어 고인의 고인의 친증처에 이르고 송을 지어 男兒到處是故鄕 幾人長在客愁中一聲喝破三千界 雪裏桃花片片紅이라 하였다. 1919년 3월 1일에 조선민족대표33인의 일원으로 조선의 독립은 선언하고 3년동안 적옥에서 신고하였고 49세에는 신간회조직에 참가하였으며 1929년 광주학생의거를 전국적으로 확대시키면서 조병옥등과 함께 민중대회를 열어 진상을 규명하고 하태를 비판하였고 이믐해에는 청년법려의 추밀단체인 만당의 영수로 추대되어 진로를 지도하면서 월간잡지 초심과 불교등을 차례로 주관하여 젊은 승려들울 계몽하고 혁신사상을 고취하였다. 일생을 통하여 시와 소설로 민족정기를 고무하다가 1944년 갑신 6월 29일 음력 5월 9일 향년 66세로 경성부의 성북동 심우장에서 입적하니 法臘(법랍)이 40세라 유해를 다비하여 망우리에 안장하였다. 사는 성품이 강직하고 심신이 정의로 연마되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기 몸과 같이 하며 글을 잘하고 변설에 능하여 붓과 혀로 대중을 계몽하여 자유주의사회를 건설하려고 필생에 노력하였으나 일본의 강압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조국의 광복을 1년 앞두고 한많은 생애를 마치었다. 저서는 불교대전 채근담강의 10현담주해 불교유신론 님의 침묵 풍후회박명등이 있고 법윤은 춘성 창림 동파 정하 용담 초안이 있고 출가전의 1자인 보국이 있었다. 사의 시조3편을 기록하여 명을 대한다. 봄날이 고요키로 향을 피고 앉았더니 삽살개 꿈을 꾸고 거미는 줄을 친다 어디서 꾸꾹이 소리 산을 넘어 오더라. 따슨볕 등에지고 추마경 읽노라니 가벼웁게 나는 꽃이 글자를 가리운다. 구태여 꽃밑글자를 읽어 무삼하리요. 대실로 비단짜고 솔잎으로 바늘삼아 만고청 수를 놓아 옷을 지어 두었다가 어즈버 해가 차거든 우리 님께 드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