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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 뒤 우리민족의 권리의 침탈이 얼마였는지 생존의 위협받음이 얼마이며 생명을 빼앗김이 얼마였던가? 장년은 징용으로 끌려가고 청년학도는 지원병으로 학도병으로 전장의 총알받이가 되었고 부녀자는 정신대로 끌려가고 식량은 공출로 빼앗기고 말과 글을 빼앗기고 성과 이름마저앗아간 것이 왜적이다. 광복을 맞을 때까지 36년의민족의 고통은 하늘을 찌르고 나라는 초토가 되고 유랑하였음이 얼마였던가? 1945년 왜적의 패망으로 광복을 찾았으나 우리의 국운은 빛나지 못했다. 남북분단과 6.25사변 4.19 5.16 12.12사태 등 국가는 표류했고 민생은 고통스러웠다. 삶이 고달팠고 세태가 불안하여 선열들의 유훈을 광복 후 바로 숭모하지 못했다. 1976년 매곡면민은 안상억 류강연의 서 찬으로 의거기념비를 세워 선열의 넋을 위로했으나 향화는 올리지 못했다.2001년1월 10일 매곡면민은 삼일운동 애국지사 숭모회를 조직하고 매년 3월 1일에 선열의 위대한 정신을 되새기고 기념행사를 마친 후군수의 초헌으로 향화의 예를 올리게 되었으나 삼일기념비는 풍화되고 입지가 좋지 않아 매양불락이 되니 2005년 군의원 장종석이 군의원 사업비 3,500만원의 보조로 터를 구입하고 성토하여 이곳에 숭모비를 세우게 되었다. 왜의 침탈에 항거 일신을 돌보지 않고 오직 국가아 민족을 위해 몸을 불사르신 선열들의 의거 이후 86년이 지나도록 그 정신을 숭모하지 못한 후배들의 못남이 부끄러울 뿐이었으나 이제 숭모비를 건립하고 향화를 올리게 되었으며, 3.1절 기념식을 이곳에서 거행케된 거은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우리 매곡면이 비록 면세는 약하나 충성심과 의리심과 위선을 하려는 마음은 어느 곳보다 강하고 높음을 알겠다. 이곳이우리 면민의 성역이 되고 학생들의 교육의 장이 되고 선열의 가르침을 받드는 후학들이 속출하기를 빈다. 시의 군수는 손문주이고 면장은 정성식이며 숭모회장 안병찬 부회장 박우천 총무 이광진 정석용이다. 왜적에게 피검되어 옥고를 치룬 선열들은 다음과 같다. 안광덕 형기 1년2개월 대구감옥 1990년도 건국훈장애족장 / 안준 형기 1년6개월 대구감옥 1983년도 건국훈장애족장 안병문 형기 1년3개월 대구감옥 1983년도 건국훈장애족장 / 장복철 형기 1년3개월 대구감옥 1986년도 건국훈장애족장 신상희 형기 1년3개월 대구감옥 1986년도 건국훈장애족장 / 김용선 형기 1년3개월 대구감옥 1986년도 건국훈장애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