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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석재 송선생 휘 병순은 헌종 기해(서기 1839년) 4월 10일 대전 석촌에서 태어나시어 임자(서기 1912년) 2월 4일 영동 활산에서 순의하시다. 선생께서는 천생의 덕기로서 유시로부터 백부 수송종재선생에게 공자의 학을 전수하여 그 진실을 얻어 명망이 사방에 떨치게 되자 묘의에 따라 의금부도사에 제수되었으나 덕업이 아직 이루워지지 못하였다 하여 이를 사양하시고 더욱 정진하시면서 항상 문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사람된 자는 선우후락한다는 범문정의 말을 잊어서는 않된다고 하시었다. 고종 을사에 망국의 조약이 공포되자 선생께서는 분연히 창의 "토오적문"을 팔성에 논포하여 민족의 정기를 크게 환기하시었고 경술국치에 일부로 부터 이른바 은사금을 주어 회유코자 하였으나 선생께서는 불의의 것은 사호라도 받을수 없다고 단연코 물리쳐 우리에게 올바른생의 본보기를 보여주셨으며 그후 일부가 다시 경학원강사로 천하자 분명히 하심으로서 후생들 머리속에 충의의 얼울 깊이 넣어 주셨으니 선생은 실로 참된 유학자이시며 또 위대한 애국자이시었다. 다음 글은 선생께서 음독순의하실 때에 남기신 자서명 일절이다. "茫茫宇內 莫容一身 仰西山頂 望東海濱 自有我師 死了可遵" 선생께서 가신지 이제 60갑을 맞이하여 뜻있는 사람들이 의논한 나머지 이 상을 세우고 이에 선생의 사행을 약술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