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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3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학산면(鶴山面) 서산리(鋤山里) 장터에서 군중을 이끌고 독립만세를 절규하며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어서 이날 밤 8시경에는 200여명의 군중을 지휘하여 면사무소로 몰려가서 면민들에게 강제로 나누어 줄 2만 8천 그루의 뽕나무 묘목을 뽑아서 태워버렸다. 그리고 경찰주재소로 달려가 사무실과 숙직실을 파괴하는 등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었으며, 이해 7월 1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