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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휘 선재공의 자는 순경이며 호는 청포이고 한학자이며 유학자이시다. 한말 국운이 쇄잔하여 일본의 침략마수로 병자년 강화도 조약의 조인 임오년 임오군란(제물포조약)의발생 갑오년 갑오경장 을미년 을미사변(민비시해)과 단발령 공포 갑진년 한일협정조약 을사년 을사보호조약 정미년 한일 신협약 경술년 한일합방조약등의 늑약으로 민족의 자주권과 국권침탈에 통탄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나 투쟁하니 강릉에서도 을미의병과 정미의병이 발발하여 일본에 타격을 주었다. 공은 담산의 조대현, 김진숙, 유산의 종형제 최선근, 최선호, 초당의 최신집, 최진규,최돈옥,최영방, 박장실, 깁봉공, 유옥일, 정동면(경포동)의 유식화등과 유도진흥동지회를 조직하여 충효사상을 바탕으로 한 애국애족정신을 선양하고 강릉청년회 감리교회 안경록 담임목사 강릉보통학교 학생 이명의등과 제휴 주동하여 1919년 4월 2일 장날을 이용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만들어 오후 4시경 장터에 모인 군중 수백명을 규합 대한독립만세를 소리높이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중 이에 놀란 일본경찰이 달려와 제자하자 "적들아! 오늘부터 조선을 물러가라! 우리는 자유민임을 세계만방에 표명하노라!"하며 소리 높이 외치며 대항하다가 주동자로 일본경찰에 피검되어 함흥지방법원 강릉지청에서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선고(매일신보 1919.4.14)받고 함흥감옥(원산분)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 국내에서 항일독립운동의 어려움을 예상하고 중국과 만주를 염두에 두고 기초를 다지고자 한어지남으로 중국말과 글 풍습을 독습하였다. 구국에 대한 열정으로 전념하여 양양의 애국지사 이종협과 편지를 교환하여 유대를 강화하였고 공자가어 상 하권(1906년 상해교경산방 간인)과 초서 소동파 만강홍사, 초서미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