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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현은 강원도 강릉(江陵) 출신으로 1895년부터 1896년까지 민용호의진(閔龍鎬義陣)의 오영도총독(五營都摠督) 및 소모사(召募士)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민용호는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경기도 여주에서 거의한 뒤 병력을 이끌고 원주·평창·진부를 거쳐 1896년 1월 강릉에 진출하였다. 그는 경유지에서 많은 수의 의병을 모았으며, 강릉에서 포수들을 모아 이병채(李秉採)·최중봉(崔重峰) 등과 함께 관동구군도창의소(關東九郡都倡義所)를 설치하고, 각처로 포고문을 발송하였다. 동년 3월 개항장인 원산(元山)을 공격하고자 하였으나 기밀이 누설되어 실패하고 다시 강릉으로 돌아와 동년 6월 초 고성(高城)·양양(襄陽) 등지를 점령하고 군수를 처단하였다. 한편, 포유문(布諭文)을 돌려 흔들리는 민심을 수습하면서 동년 7월 함경도 방면의 의병진과 제휴하여 제2차원산공격을 시도하였으나 여의치 않았다. 이어서 동년 8월초 500여 군사를 이끌고 강릉을 떠나 회양(淮陽)·금성(金城) 방면에 진출하였고, 황해도와 평안도, 그리고 함경도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1896년 2월 1일 권익현 등은 경무서 및 순검청을 공격하고 개화정책의 핵심인물로 지목되어 온 경무관보 고준식을 잡아 민용호에게 인계하였다. 민용호가관동구군도창의소를 설치하였는데, 권익현은 오위도총독에 임명되었다. 1896년 2월 6일 오위도총독 권익현은 북각읍소모사(北各邑召募使)에 임명되어 원산항의 정세를 정탐하며 양양·간성·고성·통천·흡곡·안병 등 6읍에서 의병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