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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 臨時政府)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의 배경 1919년 3월 1일 이전까지 각종 비밀결사와 독립운동이라는 전통이 집약되었다. 기독교와 천도교, 불교, 학생 등 전국이 계층별, 남녀별, 지역별, 학력별 없이 전부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는 면에서 기미년 3.1 독립만세 운동은 민중운동과 시민혁명의 성격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3.1독립운동을 토대로 다음과 같이 국민국가의 필요성이 절감되었다. 1. 개화 시민혁명 운동의 의식을 바탁으로 한 자립자활의 범국민운동이었다. 2. 초기의 모의.계획과정으로부터 시작하여 민중 연합전선의 형성에 이르기까지 국민에 의하여 국내외에서 폭발되었으나 그것은 상호 충격적 민족 울분의 스파크로 인해 가능해진 민족주의 의식 성장의 민족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천도교에 의하여 1910년부터 주도되어 실학인식의 개화사상이 독립사상으로 연결되어 맥락이 이어지고 이 운동은 민족자결주의에 의하여 일어난 것이 아니고 전통적으로 성숙 발전해 온 자립주의의 이념 성장과 국제정세와 광무황제의 독살 사태 2.8독립선언, 헌병경찰통치의 극렬화, 등으로 인한 전계층의 항쟁의식이 복합적으로 누적되어 일시에 세차게 폭발하였다. 4. 무정부 상태에서 민주공화국제인 정통 민간정부를 탄생시킨 민족운동을 본 궤도로 형성하여 독립 쟁취를 위한 민족 진로의 방향 감각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5. 국내외에서 새로운 형태로 민족운동을 촉진시켰기 때문에 성공한 한국의 민주주의 민중운동이었다. 따라서 3.1독립만세운동은 48인의 민족지도자로부터 남녀,빈부,귀천,지벌,문벌,학벌을 초월한 한민족 전계층에 이르기까지 자주독립을 절규한 민중운동으로 담합 결속된 성격이다. 이로써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지 30여일 전후로 국내외 일대에 민주공화국의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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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방면 의병 유학자 곽종석(郭鍾錫), 지평 김흥락(金興洛), 지평 권진연(權晋淵), 지평 강육(姜錥), 유생 이만응(李晩應), 유생 금봉술(琴鳳述), 목사 이만윤(李晩允), 진사 김수현(金壽鉉), 승지 이중봉9李中鳳), 권대일(權玳一), 도정 유지호(柳止浩), 창의대장 권세연(權世淵), 좌익장 이상오(李尙五), 영남의 의병장 신돌석(申乭石), 서재기(徐再起), 박준필(朴準弼), 임경희(林景熙), 성경호(成慶昊) 선성(宣城) 의진 대장 양산령 이만도(李晩燾), 부장 이중린(李中麟), 의병장 김도현(金道鉉), 노응규(盧應奎), 정한용(鄭漢鎔), 의병장 이강년(李康秊), 김상태(金相台), 민순호(閔舜鎬), 의병장 허위(許蔿), 청송 의진 1896.1月~4月 경북(慶北) 청송(靑松)에서 조성길(趙性吉) 등과 함께 거의(擧義)하여 감은산록(甘隱山麓)에서 적병과 교전(交戰)하여 7~8명을 사살하는 등 활동하다. 의병장 심성지(沈誠之), 의병 심관지(沈灌之), 참모 심능규(沈能奎), 소모장 심능장(沈能璋), 의병 심능찬(沈能瓚), (심성지의자), 의병 심의봉(沈宜鳳), 서기 심의식(沈宜植), 후방장 심의철(沈宜喆), 서기 심의택(沈義澤), 장재도청 심의화(沈宜華), 의병 심진택(沈瑨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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