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旌菴(정암), 劉時憲(유시헌) 先生(선생) 行蹟(행적) 東學(동학) 道接主(도접주) 劉時憲(유시헌) 선생은 서기 1843년 1월 15일 정선군 남면 유평리에서 출생하니 자는 道元(도원) 行名(행명)은 寅常(인상) 譜名(보명)은 時鎭(시진) 號(호)는 旌菴(정암)이며 동학사상을 신봉하시던 도인이였으며 2세도주 海月(해월) 최시형 선생의 은거지로 정암자택을 정하고 주야로 포덕천하 광제창생을 협의하며 해월의 十二時字(12시자) 반포로 道布德主(도포덕주) 崔時亨(최시형) 次道主(차도주) 강시원 道接主(도접주) 유시헌 김시명 심시정 신시영 신시일 최시경 홍시래 전시황 방시학 조시철 등은 "時"字(“시”자) 改名(개명)과 苦樂(고락)을 결의하며 은밀히 道勢(도세)는 전국적으로 이어졌고 설법제 기도 등 행사의 주도적인 역활로 정선의 동학 역사를 창조한 선각자로 동학혁명 시 1894년 10월 정암부인 최씨는 평창에 투옥되었다가 4개여 월의 옥고 끝에 방면되었고 차남 학종은 영월에 투옥되어 부친의 거소를 대라는 심한 고문에 "나의 부친은 나의 하늘이니 하늘에서 찾아보라"며 실신하여 12월 19일 26세로 세상을 등졌고 장남 택하는 사슬에 묶인 체 "道(도) 중진들을 찾으라"며 사방으로 끌려다니다 탈출하였고 정암은 1895년 1월 27일 新東(신동) 운치리에서 검거되어 평창에 투옥되었다가 문인들의 상소로 방면되었으며 수년간의 은거생활로 가산을 탕진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 1897년 7월 수령(초두평)에 정착하였다가 1904년 11월 14일 졸하니 묘는 수령 배고개 상단이시다. 서기 1999년 4월 5일 건비 손부 영재의 처 허경 추진 유돈생 돈희 돈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