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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도 옛적 고을 이름은 武陵桃源(무릉도원)이더라, 산이 높고 울울靑靑(청청)하여 머루랑 다래랑 먹고 살고 지고, 철따라 복사꽃 진달래꽃, 철쭉꽃 江山(강산)을 불태웠다네. 휘도는 골짜기에 굽이치는 강물은 흥건한 젖줄기 되어 물방아 돌고 철철 콸콸 淸冽(청렬)하게 흘러 浴所(욕소)하면 마음은 登仙(등선)하고 아우라지 뱃사공에게 떠나가는 임을 근심하던 아낙네의 그윽한 情恨(정한)이 서럽도록 그립던 터전이었노라. 自然(자연)따라 人心(인심) 또한 淨潔(정결)하고도 毅然(의연)하매 우국충절의 氣槪(기개)도 山勢(산세)처럼 준열(峻烈)하던 고장이 여기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삶의 哀歡(애환)이 구성진 선률을 타고 높나들고 나라사랑의 哀情(애정)과 불의에 抗拒(항거)하던 意氣(의기)가 그칠 줄 모르게 이어지는 悠長(유장)한 가락 속에 스며있는 旌善(정선)아리랑은 우리 先祖(선조)들의 얼과 멋이 昇華(승화)된 빛난 이 고장의 文化財(문화재)이러니 아득한 옛날부터 土着民(토착민)의 生活(생활)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表出(표출)되어 불려오던 이 토속적 풍류가락은 고려말엽에 이르러 不事二君(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켜 지금의 南面(남면) 居七賢洞(거칠현동)에 落鄕(낙향) 은거하였다는 선비들의 애특한 戀君(연군)과 望鄕(망향)의 情恨(정한)이 더하여져 더욱 多感(다감)한 노래가 되었으리라. 본래는 '아라리'(音譯 : 我羅理) 라고 일컫던 것이 세월이 흘러감에 어느새 보편적인 '아리랑'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으니, '아라리'란 누가 나의 처지와 心情(심정)을 '알리'에서 緣由(연유)된 듯 하더라, 이에 無形文化財(무형문화재) 旌善(정선) 아리랑은 정녕 우리들의 永遠(영원)한 마음의 故鄕(고향)이니라. 그러매로 우리는 이 文化遺産(문화유산)의 傳統(전통)속에서 來日(내일)을 살 아름답고 豊饒(풍요)한 꿈을 가꾸고 향토애와 민족혼을 불사를 슬기와 勇氣(용기)를 키울진저 이를 기려 子子孫孫(자자손손) 萬代(만대)에 傳(전)하고자 향토민의 뜻을 모아 여기 아로새겨 紀念(기념)하노라. 1977년 1월 1일 盧英七(노영칠) 짓고, 서희환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