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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리 독립운동 상기문 우리 조국이 일제에 침탈된지 10년만인 1919년 3월 1일에 민족정기를 되살려 국권을 회복하려는 거족적인 독립운동이 서울에서 일어나자 이 운동은 전국에 번져 그해 4월 21일에 이곳 금마리에서도 박수창, 천선재의 계획으로 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곳에서의 운동은 우발적으로 일어난것이 아니고 사전에 참가자의 서명을 받은 연명부까지 만든 조직적인 운동이었으므로 이곳의 이러한 민정을 눈치챈 영월군수 석명선이 이를 저지하려고 이곳에 왔다가 도리어 군중들에게 잡혀 연명부에 서명을 했을 뿐만 아니라 군수를 만세군중의 선두에 세워 만세를 부르게 하였으니 이는 다른 고을에서는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운동이다. 일제는 압수한 연명부를 근거로 애국지사를 검거하여 박광훈, 이병익, 이용헌, 박수영, 박재호, 박수경, 박수우, 박수항, 남상은, 전수길, 탁원근, 원하현, 홍봉관, 이용규, 탁은상, 조종협, 박수동의 17명을 실형에 처했고 이 가운데서 탁원근은 옥중고혼이 되었으며 이 밖에도 금마리의 독립운동에 동참했던 수많은 인사가 옥고를 치렀다. 독립은 거져 얻어진 것이 아니고 그것을 쟁취하려는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얻어진 것이기에 유서 깊은 이곳에 표상을 세워 이분들의 거룩한 애국정신을 후세에 기린다. 1993년 3월 1일 영월군수 전동빈, 영월충절현창회 회장 국회의원 심명보 건립, 강원대학교 교수 최승순 찬, 춘천성수여자고등학교 교사 윤영복 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