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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천 을사·정미의병 창의비(酒泉 乙巳·丁未義兵 倡義碑) 영월은 항일의병의 중심지로 1895년 의암(毅菴) 류인석(柳麟錫) 의병장은 영월 관아(官衙) 문루(門樓)에 '복수보형(復讐保形)'의 깃발을 높이 걸고 '영월을미의병(寧越乙未義兵)'을 참의하였다. 그는 제천으로 진격하여 '호좌의진(湖左義陣)'으로 연합의병체제를 갖춘 후 의병대장이 되어 친일파 관리들을 처단하고 충주성을 점령하였다. 삼계(三戒) 원용팔(元容八) 의병장은 1905 격고문(檄告文)을 발표하고 주천에서 '주천을사의병(酒泉乙巳義兵)'을 창의하였다. 그는 주천 금마리(金馬里)의 큰 인물이었던 박수창(朴受昌)으로부터 군자금과 화포·나귀 등을 지원받았다. 이때 박수창이 보낸 최병덕(崔炳德)과 정재식(鄭在植)이 '주천을사의병'에 합류하여 좌·우총독장(左右總督將)이 되었다. 그 당시 단양·영춘의 포군(砲軍) 100여 명과 좌변면과 우변면에 거주하던 포수들도 '주천을사의병'에 합류하였다. 원용팔의병진이 영춘(永春)을 지나 영월에 도착하자 장릉 보덕사의 승장(僧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