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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여 '호좌의진(湖左義陣)'이라 하였다. 류인석의 호좌의진은 친일파인 단양군수 권숙(權潚), 청풍군수 서상기(徐相耆), 평창군수 엄문환(嚴文煥)을 체포하여 처형하였다. 그리고 1896년 1월 5일 충주성을 점령하고 충주관찰사 김규식(金奎軾)을 붙잡아 성문 밖에서 참수하였다. 1905년 삼계(三戒) 원용팔 의병장은 영월 주천(酒泉)에서 '영월주천을사의병'을 창의하였다. 이때 영월의 정대억(丁大億), 엄성하(嚴聖河), 엄기섭(嚴基燮) 등이 참모종사(參謀從事)로 참여하였다. 특히 영월 장릉 보덕사(報德寺) 승려 김상의(金尙儀)가 승장(僧將)이 되어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1907년 '정미7조약'으로 고종이 강제 퇴위되고 군대가 해산되자 이에 반대한 의병들은 영월 주천으로 집결하여 운강(雲崗) 이강년(李康秊)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였다. 운강은 주천강에 돌단을 쌓고 '영월주천정미의병'을 창의하여 '도창의대장(都倡義大將)'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