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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 공훈록에서는 정대억 선생의 공적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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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읍 삼옥리 출신인 정대억(1872~1908) 의사는 야은공 군위현감 정서종의 후손으로서 자는 경천이고 본관은 나주이다. 그는 지조가 굳고 강직한 성품으로 대의를 위해서는 항상 남보다 앞장서는 인물로 일찍이 을사의병에 참가하였다. 1907년 일제가 강압적으로 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군대를 해산하니 국운은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우리 민족은 그들의 탄압 속에서 신음하며 통한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었다. 의분을 참지 못한 의사는 1907년 8월 19일 주천에서 도창의대장에 추대된 이강년과 함께 정미의병에 참가하여 영월 주천면 판운리 및 덕포리 독산전투와 제천 단양 충주 등지에서 많은 적을 사살하여 격퇴시키는 등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정대억 의사 1908년 6월 3일 청풍면 금수산 까치성전투에서 포로가 되어 영월로 압송되었으며 일주일 후인 6월 10일에 왜병들은 영월읍 오리정에서 의사의 눈을 빼고 목을 베어 살해하니 그 잔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정대억 의사는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의사의 숭고한 뜻을 청사에 길이 빛내고 후세의 교훈으로 삼고자 광복 50주년을 맞아 이 순국비를 세운다. 서기 1995년 8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