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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게이터는 강 건너의 산속을 가르키고 있어서 가까이 와봤다. 1895년 음 11월 경기도 이천에서 김하락·구연영 등과 함께 군사를 소모, 이천수창의소를 결성하고 선봉장을 맡아 백현, 이현 등지에서 일본군과 접전하여 몇 차례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백현 전투는 전기의병사상 최초의 대규모 승리 전투로서 이후 의병봉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2,000여 명으로 병력을 구성하여 군세를 확충, 남한산성을 공략, 점령하였다. 이어 서울진공작전을 계획하는 등 의기를 높이다가 일본군의 반격으로 남한산성이 함락되자 잔여 의병을 이끌고 경북으로 남하하던 중 유인석 의진 휘하의 서상렬 부대에 합류하였다. 특히 이강년 의진의 수안보 공략 때에 5, 6초(哨)의 군사를 수합, 서창(書倉)에서 그 일부와 합류하여 연합작전을 전개하였으며, 유인석이 요동으로 서행할 때에 수행하기도 하였다. 1906년 윤 4월 최익현 의병장이 거의하자 입진, 소토장으로 활동하다 피체되었다. 이로써 3개월여에 걸친 옥고를 치렀으며, 1907년 다시 기의한 이강년 의진에 참여하는 등 지속적으로 의병활동에 투신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