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page


23page

사당 문이 닫혀 있어서 사당 안쪽에 있는 안내판을 사당 뒤편에서 줌으로 당겨서 촬영한 것이다.
23page

엄홍도 영월 호장으로 있을때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에서 유배생활을 하던중 숙부인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관풍헌에서 승하하였다. 이때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위협속에도 엄홍도는 爲善被禍吾所甘心이라는 망을 남긴채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영월 엄씨들의 선산인 동을지산(장릉)에 염장하고 자취를 감추었다. 그후 충신 엄홍도의 충의 전신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숙종11년에 유신사에 배향되었으며, 정조의 어명으로 장릉에 있는 배식단에 사육신과 함께 그의 위패를 모셨다. 그리고 순조 33년에 공조판서로 추증되었고 1876년에 충의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23page

정사종 야은 정사종은 무과에 급제하여 단종을 모시는 익위 벼슬과 군위현감을 역임하였다. 그는 어린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단종의 안위를 걱정하였다. 1457년 경상도 순홍에 유배중이던 금성대군이 부사 이보흠과 함께 단종복위를 계획하다가 탄로나자 세조는 동생인 금성대군을 죽이고 어린 단종에게도 사약을 내렸다. 이때 단종의 시신이 동강에 버려졌음을 알고 호장 엄홍도가 앞장서 수렴하는데 동조하고 자식들에게 汝歸田里 以 子孫爲樵 不求功名라는 유언을 남긴채 청령포 강물에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
23page

추익한 자는 우삼, 호는 우천으로 태종에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부수찬, 한성부 부윤을 역임하고 영월 화원리로 낙향하였다. 그는 단종의 유배소식을 듣고 머루 다래를 따서 단종께 바치고 어린 임금을 위로하였다. 1457년 10월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단종이 승하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추익한은 영월로 향하던 중, 백마를 타고 가는 단종의 영혼을 만났다. 추 충신은 무릎을 끓고 엎드린채 “전하 어디로 가시옵니까? 라고 여쭈니 나는 태백산 산신령이 되어 가는 길이오.” 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이때부터 영월사람들은 단종의 영혼이 태백산 산신령이 되어 이 지역을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를 신격화하여 모시고 있다. 이 충절사당은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영모전 밑에 1998년 3월 영월군에서 창건하고 매년 한식날 영월군민과 후손들이 정중하게 제사를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