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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께서는 1905년 영월 주천 을사의병인 삼계(三戒) 원용팔(元容八) 의진(義陣)에서 참모종사(參謀從事)로 활동하였다. 이때 함께한 의병장으로는 엄성하, 엄기섭, 그리고 제천의 지규창, 지병언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의병대장 원용팔이 체포되어 옥사하고 의병 진영이 무너지자 그는 2년 동안 강원도와 충청도를 중심으로 적의 배후를 기습하는 게릴라식의 유격투쟁을 했으며, 일제의 감시로 고향인 영월로 돌아오지 못하였다. 정대억 의병장은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와 함께 군대해산 등 일제침략이 가속화되자 또다시 항전에 나서 운강(雲岡) 이강년(李康秊)의 정미의병에 참여하였다. 이강년과 함께 작전을 펼쳐 주천면 판운리에서 왜병 36명을 무찔렀고, 충주 가흥에서도 12명을 사살하였다. 이후, 그는 영월 김삿갓면에 사는 김상태(金尙台) 의병장과 안성해(安成海), 백남규(白南奎), 변학기(邊鶴基), 성익현(成益顯), 정경태(鄭敬泰) 등과 충청도·강원도 일대와 안동 서벽(西壁)전투에서 일본군을 맞아 크게 승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