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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天 丁大億 義兵將 追慕碑(경천 정대억 의병장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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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억은 1907년 원용팔 의병장은 1896년에 심상희의진(沈相禧義陣)과 유인석의진(柳麟錫義陣)에서 활동했다. 원용팔 의병장은 호남의 기우만(奇宇萬)·유인석 등에게 글을 보내어 함께 봉기할 것을 권고하거나 의병봉기에 앞서 자문을 구하고 각처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모집하였다. 1905년 8월 16일(음 7월 16일) 원주 주천(酒泉)에서 봉기한 원용팔은 원용수(元容銖) 등과 함께 단양(陽郡)으로 이동했다. 정운경(鄭雲慶) 등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함께 영춘(永春)에 이르렀다. 영춘에서 제천(堤川)을 거쳐 영월(寧越)에 이르렀을 때 의병의 총규모는 약 1,000여 명 정도나 되었다. 원용팔 의병장은 계속하여 충북과 강원도 지역에서도 의병을 모집하였으나 9월 24일(음력 8월 26일) 원주로 향하던 중 일본군에 체포되었다. 정대억은 원용팔의진에 들어가 영춘에서 의병부대를 정비할 때 원주의 김태관(金泰寬) 등과 함께 참모종사로 임명되어 의병활동을 했다. 1908년에 이르기까지 의병장으로 활동하던 중 순국했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