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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걸리 기미만세운동 기념비 민중이 그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고 싶거든 홍천군 물걸리에 와서 보아라. 삼일운동때 민중이 어떤 일을 했던가를 알고 싶거든 홍천군의 동창마을인 물걸리에 와서 물어보아라. 물걸리는 내륙지방과 동해안의 물화를 교역하는 상인과 나그네가 묵어가던 교통의 요지였다. 홍천군의 조운을 담당한 동창이 있었고 내촌면소도 여기에 있었다. 오가는 사람과 우마가 득실거리고 주막과 마방과 객주집까지 즐비하게 들어선 큰 마을이었다. 그렇게 번성하던 물걸리가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아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물걸리만이 아니라 대한제국이 망해가던 모습이었다. 그래서 안으로 봉건적 인습을 타파하여 근대화를 달성하고 밖으로는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을 물리쳐 자주화하기 위하여 1994년에 전국적으로 동학농민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그때 홍천군의 동학농민군이 농민전쟁의 최후를 장식하였다. 물걸리에 주둔한 홍천군 동학접주 차기석이 일천여명의 농민군을 지휘하여 그해 12월 장평리에서 싸우고 풍암리 자작고개에서 마지막으로 결전할새 수삼일간 혈전 끝에 8백여명이 장렬하게 그러나 처절하게 전사하였다. 그래도 농민들은 패배감에 빠져 실의하거나 침략자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용약재기하여 항일의병을 일으켰는가 하면 동학교를 새롭게 키우고 또 발전시켰다. 의로운 역사는 의로운 희생 위에서 꽃핀다는 교훈을 보여준 장한 모습인 것이다. 그 장한 모습이 1919년 물걸리 삼일운동을 만들어 낸 힘이 되었던 것이다. 삼일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적으로 퍼져나갈때 홍천군에서는 기독교인 중심으로 홍천읍 시위운동을 추진했고 유림들은 동면 속초리 운동을 추진했는데 동학을 계승한 천도교인들은 물걸리운동을 추진했다. 천도교인들은 상처투성이의 풍암리 전투를 회상하며 비장한 각오로 물걸리 운동을 추진하였다. 그때 전영균 양박에 모여 김덕원 장두와 전성렬 부장두의 지휘 아래 시위를 계획하고 약방의 다락에서 태극기를 만들었고 전영균 이문순은 밤낮으로 산 넘고 물 건너 이 마을 저 마을로 연락하였다. 그리하여 4월 3일 내촌면 화촌면 서석면 내면 그리고 인제군 기린면의 농민까지 수천 군중이 물걸리에 모여 만세를 불렀다. 전성렬의 사회로 김덕원 장두의 연설이 끝나자 이문순의 선창으로 만세를 불렀다. 대한독립만세 조선독립만세의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였다. 골목마다 언덕마다 만세꾼이 가득찼는가 하면 담 위에도 지붕 위에도 그리고 내촌천 다리 위에도 만세인파가 넘실거렸으니 남녀노소가 한마음 되어 두 팔을 높이 들고 만세를 불렀다. 자유와 해방을 외쳤다. 일본제국주의여 물러가라 대한독립만세 조선독립만세 쌓이고 쌓였던 겨레의 울분이 폭발한 4월 3일이었다. 정의의 함성이 봇물처럼 터저나온 동창마을이었다. 민족의식과 애국심이 하늘까지 사무치는 민중의 우렁찬 만세소리가 아니더냐. 바로 그 시각에 일본헌병과 그의 앞잡이들이 출동하여 총을 쏘았다. 맨손 맨주먹으로 만세를 부르는 군중을 향해 총을 마구 쏘았다. 양심만으로 살아온 물걸리 백성들을 향해 이리떼 헌병들이 총을 쏜 것이다. 그리하여 이순극 전영균 이기선 김자희 연의진 이기선 전기홍 양도준이 즉사하고 함춘선 승만수 등 20여명이 부상하였다. 그리고 김덕원 전영균의 집은 불태우고 최공직의 가게집은 부수고 박살냈다. 이어 무고한 사람까지 잡아가 태형을 주고 고문하여 불구의 몸이 된 사람이 부지기수에 이르렀다. 더욱 놀랍고 무서웠던 것은 부상자들에게 약을 주고 뒷돈을 주며 간교하게도 순박한 주민들을 꾀우며 이간질하고 8열사의 거룩한 죽음을 헛되다고 선전 선동한 것이다. 그것을 일본제국주의의 회유 분열정책이라 한다. 일본 침략자들에 의해 짓밟힌 이 나라 민중이 또다시 농락을 당하고야만 것이다. 결국 이곳 물걸리는 폐허의 마을로 변하고 마방집거리의 흥청거리던 영광은 옛 이야기로 사라져갔다. 그것이 일본제국주의자들이 노리는 바였다. 그러나 그렇게 물러설 수는 없다. 1919년 4월 3일 물걸리에서 울러퍼진 만세소리는 민족 청사에서 영원히 메아리칠 것이오. 열사들의 죽음은 날이 갈수록 형형하게 빛날 것이다. 그 함성 그 죽음의 힘으로 이 나라가 광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는 불탄 재더미와 피무덤 위에서 더욱 발전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거늘 집들이 불타고 8열사가 순국하고 식민지하에 겪어야 했던 온갖 고초를 어찌 헛되다고 말하리오. 어찌 마음까지 빼앗기겠는가. 몸은 죽어도 마음은 살아야 죽음 속에서 살아나는 높은 가치를 갖게 된다. 선열들의 정의감과 희생정신과 애국심을 가꾸면 그 가치가 물걸리에 쏟아지게 된다. 그래야 물걸리의 영광을 되살릴 수 있는 것이다. 모두 옛 영광을 되살리기 위하여 함께 힘을 모으자. 여기를 지나는 길손들도 발을 멈추고 물걸리의 꽃다운 역사를 찬미하자. 위대한 역사에 박수를 보내자. 그리고 고개를 숙이자. 서기 1998년 4월 3일 한국사학사학회 회장 문학박사 조동걸 삼가짓고 강원대학교 교수 문학박사 황재국 삼가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