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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열각 약사 물걸리 항일의거는 1919년 4월 3일 장두 김덕원 의사의 주도로 5개 면민(내촌, 화촌, 서석, 내면, 인제) 3,000여 명이 집결하여 생명을 바쳐 항일 봉기한 역사적인 구국운동이었다. 그러나 이 운동은 민족이 해방을 쟁취할 때까지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있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당시 마을대표 채희석(봉석) 선생은 최택성 선생의 협조로 팔열추모보국회를 기성하여 희생자 8명을 열사로 추존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현창탑을 건립키로 했다. 그러나 6.25전란을 맞아 현창탑 건립은 실현되지 못하다가 1963년 팔열각 건립추진위원회를 다시 기성하고 주민의 노역과 홍천군의 지원을 받아 전성남의 설계로 건립되었다. 1966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한국독립운동사 제2권에 수록하고 1969년 춘천교육대학교 조동걸 교수(국민대학교 대학원장)의 조사보고로 물걸리는 충절의 고장, 구국운동의 성역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991년 기미만세공원이 조성되면서 쇠락된 팔열각 건물을 철거하고 1995년 광복 50주년 동창만세운동기념사업회가 기획하고 김덕원 의사 후손 남강 김창묵 회장의 성력으로 복원되었으며 현판의 판각은 광복회장 이강훈 선생의 휘호이다.